Thursday, October 10, 2013

신호등









구 동독의 신호등맨, 암펠만은 가장 사랑받는 베를리너입니다. 1961년 10월 13일 당시 구 동독의 수도, 베를린에 처음으로 보행자 신호등이 소개 되었습니다. 교통심리학자 카알 페글라우씨 는 당시 증가하는 거리의 교통사고 위험을 막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홀로 존재하던 자동차 신호등의 추가물로써 보행자 신호등 암펠맨은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디자인은 심리학적으로 잘 숙고 되어졌습니다. "호감“을 주는 심볼에 교통 이용자들은 더 잘 반응하였습니다. 



독일통일 후 사라져 갔던 수많은 구 동독의 사물들처럼 암펠만 또한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었습니다. 구 서독의 관청과 정치인들, 교통기술자들은 구 동독의 암펠만에 대해 험담을 하였습니다. 



1994년 부터 구 동독의 암펠만은 구 서독 또는 유로 신호등맨으로 교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논쟁의 대상은 단지 오래되서 낡은 전자부품 의 결함에 관계된 것이지 암펠만의 심볼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관료주의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1996년 구서독 출신의 산업디자이너, 마쿠스 헥하우젠(Markus Heckhausen)씨는 폐기된 암펠만을 인수 했습니다. 못쓰게 된 신호 등의 오리지널 글래스로부터 첫번째 암펠만-제품이 탄생 했습니다. 빨간, 녹색의 신호등 램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신호등 램프와 이러한 암펠만-스토리에 대한 미디어의 반향은 엄청 났습니다. 그리 하여 매장 되었던 암펠만은 독일국민의 의식속으로 그렇게 파 고 들어갔습니다.

통일 독일에서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한 민족이다(Wir sind das Volk)“에 따라 시민들은 일상 속 마지막 구 동독의 심볼중의 하 나인 암펠만의 폐기를 막으려 했습니다. 암펠만 구제를 위한 위원 회(Komitee zur Rettung der Ampelmännchen)“가 설립되었고, 많은 창조적인 행위들을 통해 이 재미있는 캐릭터에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디어들 또한 테마로 삼은 까닭에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더 이상 암펠만을 공정한 논쟁에 부치는것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 할때 북한에서 남겨야할 우수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