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강준민 지음
두란노/2000년/356쪽
▣ 저자 강준민
서울신학대학 졸업 후, 아주사 신학대학원과 탈봇 신학교를 마쳤다. KOSTA(국제복음주의 학생 연합회)와 미주 두란노서원의 큐티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며, 월드 미션 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영성과 목회 지도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미국 LA소재 로고스 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 중이다. 저서로는 『뿌리깊은 영성』『묵상과 영적 성숙』 『꿈꾸는 자가 알아야 할 21가지 믿음의 법칙』 『사랑과 열정으로 쓴 목회 서신』이 있고 역서로는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가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줄 알았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 준비했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은 꿈을 성취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성취하길 원합니다. 이 책에는 당신의 꿈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성취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정직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꿈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꿈을 정복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고난, 역경, 실패, 유혹, 낙담, 좌절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꿈꾸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이 책에는 꿈을 정복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비결도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꿈을 성취한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꿈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신 요셉의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요셉과 같이 꿈꾸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요셉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바로 이 시대의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 차 례
제1부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꿈꾸는 자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꿈 /꿈은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다 /유혹의 덫을 피하라 /꿈꾸는 자는 훈련을 통해 준비된다 /꿈이 성취되는 축복된 순간
제2부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기쁨
꿈의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만들라 /성취된 꿈은 상처를 치유한다 /꿈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지혜/ 꿈꾸는 자의 거친 사랑의 손과 부드러운 마음 /하나님은 꿈의 동역자 /꿈꾸는 사람의 균형잡힌 인격
제3부 꿈꾸는 자의 축복의 열매
큰 숲을 그리며 꿈의 씨앗을 심으라 /축복 기도로 자녀의 꿈을 키우라 /꿈꾸는 자는 축복의 열매를 거둔다 /꿈의 완성은 하나님의 섭리에 있다 /믿음의 꿈은 최후까지 승리한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강준민 지음
제1부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꿈꾸는 자
요셉은 꿈을 소유한 사람이었고, 꿈을 성취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꿈을 위해서 값을 지불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꿈을 소유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그 이유는 꿈을 소유했지만 그 꿈을 위해서 값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꿈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요셉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꿈이었습니다. 요셉을 강하게 만든 것도 그의 꿈이었습니다. 요셉을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만든 것도 꿈이었습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꿈꾸는 사람의 미래는 꿈꾸지 않는 사람의 미래와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에, 꿈꾸는 사람 앞에는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꿈꾸는 사람에게 항상 머리를 숙입니다.
둘째로 세상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인간을 대단히 위대하고 두렵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소유를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이삭까지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꿈을 성취한 이후에 실패하는 까닭은 지나치게 소유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세상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진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소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과감하게 투자하고, 희생하고, 초월하게 됩니다. 또한 꿈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죽음을 초월한다는 사실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꿈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꿈은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의 크기와 방향입니다. 꿈의 크기에 따라서 인생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꿈의 방향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방향을 잘 설정한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꿈을 잘 키우고 가꾸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꿈을 주십니다.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통해서 꿈을 주시기도 합니다. 꿈을 성취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할 때, 그들 안에 있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붙잡았던 원리를 배워서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의 생애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편, 꿈꾸는 사람은 요셉처럼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구덩이는 고통과 고난의 구덩이입니다. 실패라는 구덩이입니다. 질병이라는 구덩이입니다. 배신이라는 구덩이입니다. 역경과 시련이 동시에 한꺼번에 찾아와 꿈꾸는 자를 당혹하게 하기도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화려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금을 타는 사람으로 왕궁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그는 사울 왕의 끊임없는 미움을 받습니다. 사울 왕의 추적을 받으며 죽음의 골짜기를 수없이 통과합니다.
이런 시련의 순간에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이 꿈꾸는 사람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르우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와중에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우리가 죽이지 말고 구덩이에 던지자!"라고 르우벤이 말합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시련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안에 우리의 생애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심은 성급한 꿈의 성취보다는 꿈꾸는 자의 성숙에 있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를 시련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17세의 나이에 꿈꾸는 요셉이 성숙하려면 하나님의 시련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꿈과 함께 꿈꾸는 자를 성숙시키는 데에 바로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만일 꿈꾸는 자가 성숙되지 않고 그 꿈을 성취하게 되면, 그 꿈을 통해서 악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섬김을 위해 주어진 중요한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꿈이 성취되는 것보다 꿈꾸는 자가 성숙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요셉을 훈련시키시고 시련으로 단련하신 것입니다.
꿈은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다
꿈은 소유해도 되고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꿈은 꼭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 마음에 오히려 독을 쌓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꿈을 가진 사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칸트는 그의 나이 74세에 유명한 철학 책을 썼습니다. 베르디는 85세에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습니다. 시인 테니슨은 80세가 되어 "죽음을 향해"라는 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또한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꿈은 나이를 초월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처럼 찾으시는 것은 꿈입니다.
그렇지만 꿈꾸는 사람이라고 다 꿈을 실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행운을 기다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남자가 매일 밤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제발 한 번만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제발 좀 당첨되게 해주셔서 다시는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몇 년 동안 이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어느 날,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네가 최소한 복권 한 장이라도 산다면 복권 당첨을 고려해 보겠다!"
복권 한 장 사는 값도 지불하지 않고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련을 만난다고 인간이 다 위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시련 당하는 자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히브리 사람 가운데 애굽에 팔려 간 사람이 요셉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만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원망하며 안일하게 살아갈 때 요셉은 미래를 위해 피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혹의 덫을 피하라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혹독한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도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실패의 순간도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시험은 바로 유혹입니다. 시련을 견디는 사람들도 유혹 앞에 쓰러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습니다.
인간은 역경의 순간이 아니라 번영의 순간에 약합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역경은 인간으로서 견뎌 내기 힘든 상대이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 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유혹 앞에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또한 유혹은 한 순간 극복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은 인생의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보통 20대와 30대의 젊은 날에 찾아오는 유혹은 성적인 유혹입니다. 40대에 찾아오는 유혹은 명예라는 유혹입니다. 성취를 통해서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유혹입니다. 50대 이후에 찾아오는 유혹은 물질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안전하게 보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런 유혹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을 정복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유혹의 성격에 따라, 싸우고 정복해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유혹은 싸우거나 정복해야 할 유혹이 아니라 피해야 할 유혹이었습니다. 요셉은 젊고 성욕이 왕성한 나이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 가운데 성적 욕망보다 강한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적극적으로 요셉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이런 유혹을 이기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가진 꿈 때문입니다. 그의 꿈은 단순히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꿈은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과 그 당시 전세계를 구원해야 할 꿈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정욕에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엄청난 꿈이었습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유혹보다 강렬한 하나님의 꿈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꿈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이 크다는 것은 꿈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꿈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꿈이 큰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줄 압니다. 시시한 쾌락에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시시한 쾌락만큼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꿈꾸는 자는 훈련을 통해 준비된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을 이길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정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언제나 내면에 있습니다. 요셉의 훌륭함은 극기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극복한 요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의 고통은 선행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의를 행하고, 선을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은 불공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유혹을 극복했는데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감옥행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오히려 오해와 비난의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요셉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 아픔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뢰했습니다.
요셉의 특징은 고난 중에도 멈추어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계속해서 전진했습니다. 뒤로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버린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환경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행했습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혹독한 훈련은 기다리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1년, 감옥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2년 동안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인물들일수록 오래 기다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때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의 때를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기다림의 때에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로 미래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배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꿈이 성취되는 축복된 순간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성취의 기쁨입니다.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서 그 꿈을 성취할 때, 인간은 최상의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꿈이 없는 사람은 성취를 통한 신비로운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뼈를 깎는 훈련을 합니다. 때로는 가족을 떠나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삶을 절제하면서 4년, 8년, 또는 16년 동안을 기다리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헌신의 대가로 메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면서 꿈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환희에 찬 삶을 경험합니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꿈이 성취되는 순간, 지나간 과거의 모든 사건들이 요셉에게 새롭게 해석됩니다. 어두운 시절들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이것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분이 "벼랑 끝으로 오세요!"라는 글을 썼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대답했다. "무서워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갔다.
그는 그들을 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아올랐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벼랑 끝에 서서 떨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하늘을 날아 올라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기회를 탈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가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회를 알아보았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중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 앞에 나가기 전에 먼저 외모를 가꿉니다.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요셉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그는 기회가 왔다고 그 기회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기회를 포착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꿈을 해석할 지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쉽게 이 기회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무르익기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위해 준비하십시오.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알아봅니다. 준비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와 함께 매일 매일 준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기회에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함 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회란 잡으면 눈부신 열매를 맺지만 소홀히 여기면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2부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기쁨
꿈의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만들라
기다림 가운데 이룬 성취는 쉽게 이룬 성취보다 그 기쁨이 훨씬 큽니다. 땀 흘린 수고 후에 찾아온 안식,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맺어진 사랑은 고귀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성취한 꿈은 값진 것입니다. 요셉은 13년의 기나긴 기다림, 피눈물 나는 고통 중에 꿈을 성취합니다. 꿈을 성취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을 외모로 쉽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농장 주인이 자기 집 머슴이 자기 딸과 사귀는 것을 알고 그를 쫓아 버렸습니다. 35년 뒤 주인이 창고를 치우다가 우연히 머슴의 짐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머슴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는데, 바로 미국의 20대 대통령인 A. 가필드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될 사윗감을 쫓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머슴도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괴테는 "먼지도 태양 빛을 받으면 빛을 발한다."고 말했습니다. 먼지 같은 인생도 태양 빛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노력과 교육과 훈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으면 그 땀 흘림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훌륭함은 그가 성공한 후에 더 잘 나타났습니다. 요셉의 성품은 고난의 때보다 성공한 후에 더 아름답게 드러났습니다. 사실 인간은 고난 중에는 겸손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번영의 때에는 교만해지기 쉽고,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후에 몰락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공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성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디딤돌입니다. 요셉은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 것보다도 성취한 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상에 결코 오랫동안 머무르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축하만 받고 있으면 안됩니다.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정상은 단순히 한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상에 세우신 것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는 사람이 오래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명을 맡은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8절에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사명자의 길은 절대로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물론 영광도 있고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의 길에는 항상 수고와 땀과 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꿈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지혜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기 원한다면 평범하게 살기를 거절해야 합니다.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를 뿐이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꾸는 요셉은 항상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문제라 할지라도 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말만 하고, 관망만 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해서 해결의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꿈꾸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인생에 비전을 제시합니다.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문제 속에서 새로운 길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큰 꿈을 성취하려면 큰 문제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꿈꾸는 사람들은 문제를 예상하며 해결책을 간구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모험심이 없습니다. 의심이 많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씁니다. 야곱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두려움 속에 산 사람입니다. 형 에서를 두려워했습니다. 형에게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날 때 두려워했습니다. 피해의식이 강했습니다.
야곱은 야심이 있었지만 꿈이 없었습니다. 욕심은 있었지만 비전이 없었습니다. 꿈과 야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꿈과 욕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타인 지향적입니다. 욕심과 야심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지향적입니다.
요셉의 강인함은 자신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로 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의 동역자
요셉은 그의 꿈이 성취되는 성공을 맛보았습니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핀 한 송이 꽃처럼, 하루아침에 감옥에 있던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성공을 경험합니다. 꿈을 성취하는 것은 달콤한 것입니다. 성공은 감미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공이라는 자리에 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공은 꽃과 같은 것입니다. 꽃처럼 화려한 것이 성공입니다. 자기가 꿈꾸던 것이 성취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꽃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찾으십니다. 꽃이 목표라면 열매는 생의 목적입니다. 나무에 꽃이 핀 후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나무의 영광은 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때 성공했다가는 더욱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성공이 화가 되고, 성공이 가정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적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공까지만 목표를 정했지 성공 후에 맺어야 할 열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성공 후에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생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성공에 인생 최종 목표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명 완수에 우리의 최종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꿈은 정치가가 되어 만인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정치가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면, 만인의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명처럼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용감하게 만들고, 성실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만들고, 경건하게 만들며 진지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는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목적을 깨닫는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대업을 성취한 사람을 보십시오. 역사의 큰일을 이룬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사명을 자각한 사람입니다. 자기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입니다. 요셉은 꿈의 성취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사명의 성취를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도 쉽게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일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절을 한 때는 그가 성공한 때이지 꿈이 실현된 때는 아닙니다.
꿈의 성취와 실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꿈의 성취는 그의 꿈이 완성되는 초기의 사건입니다. 꿈의 실현은 꿈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선명했습니다. 창세기 37장 7절을 보면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요셉의 위대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요셉을 위대하게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에 말씀의 핵심이 있습니다. 사실 요셉과 같은 성품을 가진 인물은 세게 역사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 가운데 요셉의 성품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을 한 인물의 성품이나 기질이나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의 반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두 손을 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맡겨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인생의 노력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신비롭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문제는 풀리고 말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우리 나라의 목욕탕에 써 있는 말이 있습니다. "맡기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인 백."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우리 생애, 우리 자녀, 우리 사업, 우리의 재능과 은사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고 있으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 요셉은 이 땅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꿈을 꾸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처럼 당신이 가진 꿈이 실현되길 원하십니다. 꿈이 실현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원하십니까? 부디 꿈을 소유하십시오. 소원을 가져야 소원을 성취합니다. 꿈이 있어야 꿈을 이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