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7, 2014

불공평한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에 대한 정부지원

19억 VS 9억 = 265명 VS 179명



2014년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26,124명 이다. 이들 중 10~19세 학령기 교육대상은 2,874명이다. 2013년 기준 북한이탈 청소년 정규학교 재학생은 1,992명(90%) 이고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청소년은 2013년 10월 말 현재 265명(10%)이다. 그리고 한겨레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은 179명이다.  

출처 : 통일부 홈페이지
출처 : 통일부 홈페이지

통일부는 그동안 탈북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하나원의 "하나둘학교", 탈북청소년 특성화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 를 설립 운영하고 있으며,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통해 대안학교와 방과후 학교 지원, 미취학 아동 및 초등학생 대상의 학습지 지원 등 다양한 교육지원 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179명이 재학하고 있는 원불교 재단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 한겨레 학교 지원 예산은 19억원 지원 예정인 반면 합계 265명이 재학하고 있는 일반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 8개소에 대한 지원 예산은 9억원 지원 예정이다.


출처 : 국회 2014년 외교통일위원회_예비심사검토보고서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교육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대안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교육부로부터 교육과정 인가를 받은 ‘여명학교’의 경우, 교육청의 학교 인가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교사 자격증을 갖춘 정식 교사를 채용해야 하는바, 최소 정규학교 수준으로의 인건비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여명학교 1년 운영 예산은 13억원이다. 유일하게 정부인가를 받은 북한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이지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을 통한 정부지원은 2억원이고 나머지는 개인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개인 후원자들도 정부 인가를 받은 후부터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후원을 중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여명학교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 24조(교육지원)에 의해 학생들로부터 수업료를 징수받지 못하고, [초,중등교육법] 제 2조 2 제5호 따른 '각종학교'이기 때문에 교부금 산정기준에 포함되지 않아 교과부로부터 재학생 수업료도 보전 받지 못하여 운영상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출처 : 교과부 http://www.mest.go.kr/web/100088/site/contents/ko/ko_0350.jsp?selectId=41007
대안학교 교사들은 학교운영비를 충당하려고 정부 프로젝트나 기타 재단 프로젝트 공모사업을 준비한다. 교육에 힘써야할 교사들이 프로젝트 제안서를 작성하고 보고서 작성에 에너지를 쏟다보면 학생들과 대화하고 소통을 할 시간은 당연히 줄어든다. 

179명이 재학하고 있는 한겨레 학교 운영에 19억원 예산 지원을 하면 똑같이 265명이 재학하고 있는 8개소 대안학교에도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지원하여야 하지 않을까? 



Sunday, November 3, 2013

힐링을 넘어선 빌리빙 미디어교육



TFF Co-Founder Jane Rosenthal & TFF CEO Jennifer Maguire

2012년 7월 미국 LA 에서 열린 구글포럼에 초청 받아서 참석했었 습니다. 포럼에 가면서 모교인 여명학교와 구글이 함께 협력하여 함께할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지 고민 하면서 제안서 한장을 들고 갔었습니다.  그 이후로 구글 Youtube 팀에서 여명학교에 카메라 70대 를 선물했습니다. 구글본사에서는 구글코리아 직원들이 여명학교에서 자원봉사 해도 출근시간으로 인정받을수 있는 기관으로 지정해 놓았습니다. 구글에서 여명학교에 애정을 갖고 함께 많은일을 해준 지은이의 역할이 너무나 컸습니다. 


 뉴욕에서 20년간 미디어교육 활동을 해오신 박혜정 선생님


2013년 Google Ideas 에서는 여명학교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통해 자신들의 스토리를 표현할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Tribeca Film Festival 에 이사로 활동하고 있던 Google Ideas Director Jared Cohen 이  뉴욕의 트리베카 영화제에 의뢰 하여 여명학교에 미디어교육을 실시하게 자금 지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트리베카 영화제에서는 저에게 여명학교 미디어 교육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 하였습니다. 저는 흔쾌히 응했고 조금 머리아픈 계약기간이 있었지만 올 한해 여명학교 미디어 동아리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함께 미디어교육에 대해 고민하던 도영이와 향미 두명의 남한친구와 함께 팀티칭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3월에 아이들과 처음 만나 미디어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해서 사진을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해보기, 잡지의 그림을 통해 자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표현해 보기 등등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해보았습니다. 



일단 교실에서 수업시간에는 자기 이야기를 할수 없던 친구들이 미디어동아리 시간에는 자기가 말을 할수 있으니 너무 재밌게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바쁜 학교일정 때문에 옆에 친구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들을수 없었던 친구들은 서로를 알아갈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명신라면 광고 패러디 from J coop TV on Vimeo.
여명학교 미디어 동아리 친구들이 직접 촬영하고, 스토리보드 만들고, 편집한 광고 패러디 영상입니다.



미디어의 "미" 자도 모르던 친구들이 미디어동아리 활동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미디어라는 툴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할수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미디어는 어떻게 다른지도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디어를 이해하고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보더니 지금은 친구들이 스스로 뮤직비디오를 제작 하고 있습니다. 저는 초반에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제작하는지 그것만 이야기 해주고 진행은 모두 여명학교 학생들이 하고 있습니다. 1년전 제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따라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뮤직비디오 Storyboard by 영란

뮤직비디오 제작 기획서, 시나리오 작성, 스토리보드 그리기, 예산작성, 로케이션 헌팅, 촬영, 소품준비, 배역섭외, 스튜디오 섭외 모두 학생들에게 맡겼습니다. 결과는 어떨가요? 



정말 놀랍게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서로 자기 역할을 찾게 하고 그 역할을 맡겼더니 정말 누구보다도 자기역할을 잘 해내고 있습니다. 제가 따로 할 일이 없어졋습니다. 실업자가 된 느낌입니다. 그리고 여명학교에서는 할수 없는 남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고 녹음하고 촬영하며 남북의 친구들이 작은 통일을 만들어가는 기획까지 스스로 해내고 있습니다. 

교육자는 앞에서 끌어가는것이 아닌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것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취급을 하면 아이가 되지만 어른취급을 하면 어른이 됩니다. 우리 고향 친구들에게 역할을 맡기고 그 역할에 맞게 대해주면 그역할을 충분히 소화할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고 있는 친구 들 이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후배들에게 감사합니다. 너무 멋진 작품 만들어 낼 친구들이 기대됩니다.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 주세요. 앞으로 11.9일(토요일) , 11.16일(토요일) 두번의 스튜디오 녹음과 촬영, 야외촬영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기도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 프로젝트를 후원해 협찬해 주신 Googld Ideas와, Tribeca Film Festival 그리고 스튜디오 협찬을 도와주신 G&M 글로벌 문화재단에 감사 드립니다.

Friday, October 18, 2013

Cry with Us




북한 어린이돕기 프로젝트 앨범 - Cry With Us 
원더걸스,김현정,박상민,신지,이지훈,제이워크,쥬얼리,차인표 등...

Thursday, October 10, 2013

MBC 정전협정 60주년 특집 "DMZ 에서 베를린까지"


MBC 정전협정 60주년 특집 "DMZ 에서 베를린까지" from J coop TV on Vimeo.

신호등









바르샤바

원래 바르샤바는 무지무지 아름다운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1939년의 바르샤바 방위전, 1943년의 바르샤바 유대인 봉기와 1944년의 바르샤바 봉기와 같은 대규모 시가전이 발생하면서 온 도시가 박살이 나고, 더군다나 공산주의 치하에서 재건에 나서는 바람에 대부분의 유럽 도시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 도처에 널려있고,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15층이 넘는 성냥갑 아파트 까지 있다. 옆동네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와 이곳을 동시에 둘러보면 실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다운시켜 주는 건물이 위의 사진속 오른쪽에 위치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인 "문화과학궁전"으로, 이 1955년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 인민들에게 주는 선물이랍시고 지은 건물이라 전형적인 스탈린 양식의 건물이다. 근데 스탈린은 1953년에 죽었는데 저건 스탈린 유령이 준 선물인가? 폴란드 사람들은 이 건물을 무척이나 싫어하며 관련 농담도 있을 정도이다.

모스크바 대학 본관이 이거랑 비슷하게 생겼으며, 소련 치하에 있었던 나라인 라트비아의 리가나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에도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있다. 문화과학궁전을 철거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상징의 의미로 보존을 결정했다고 한다.그래도 모스크바보다는 낫다. 모스크바에는 스탈린 양식 건물이 7개나 된다.

참고로, 문화과학궁전의 벽면에서는 사회주의 투사들의 조각상들을 볼수 있는데, 북한 여성도 있다.

그렇긴 하더라도,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를 정말 최선을 다하여 재건하였다. '벽돌 한 장까지 고증을 거쳐 재현된 도시'라는 별명이 바르샤바에 붙여져 있다. 유치원 아이들 스케치북에 그려진 바르샤바의 풍경들과 외국 동포들이 보낸 소중한 사진들도 긁어모았으며, 쓸만한 벽돌들도 다 모아서 재건하였다. 보이 스카우트도 동원되어 도시 재건에 힘썼으며, 고풍스러운 느낌을 재현하기 위하여 일부러 벽돌이 살짝 낡은 느낌이 들게 할 정도로 상당히 정성스럽게 재건하였다.덕분에 외국에서 바르샤바로 관광 온 사람들은 상당히 오래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이 도시의 역사가 70년 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복원에 대한 폴란드 인들의 열망이 가득했다는 것.

하지만 그렇긴 해도 바르샤바 전체를 다운시키는 문화과학궁전의 위엄이란... 참고로 동유럽에서 가장 볼만한 도시로 크라쿠프, 프라하, 부다페스트를 꼽는데 바르샤바가 빠진 이유가 바르샤바 민중봉기 때 완전히 초토화 되어서이다.

Tuesday, October 8, 2013

도산 안창호의 서번트 리더십


도산 안창호는 1900년대 전후 전근대적 지배구조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사회에서, 정치 경제사회교육언론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한 선구적 인물이다. 그에게는 전통사회의 리더의 일반적 특징인 문벌도, 학벌도, 재력도, 권력도 없 었지만, 국내에서, 미국에서, 상해에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인물들이 모여들었고, 모 든 활동에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도산아카데미연구원, 2004: 10).

도산은 평생에 점진학교(1899), 평양대성학교(1908), 동명학원(1924) 3개의 학교를 세워 교육활동을 했고, 청년학우회, 공립협회, 흥사단,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상해임시정 부, 대독립당 등의 수많은 단체를 조직하여 사회교육과 정치활동을 주도했고, 마산동자기 회사, 태극서관, 북미실업주식회사, 대생철공장 등의 사업체를 설립하여 경제활동을 했고, 공립신문, 독립신문, 신한민보 등의 신문을 발행하여 언론활동을 했다. 만년에는 해외 동 포들의 공동체적 삶의 터전으로 이상촌건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도산의 이런 모든 활동 은 민족의 힘9)을 길러 국권을 회복하고 나아가서 번영된 민주국가의 건설이라는 하나의 목적과 비전으로 집약된다.

문벌도 학벌도 권력도 재산도 없는 도산이 이 처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정직과 성실을 기초로 섬김의 자세로 희생하고 봉사하는 서번트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그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 서번트 리더십이 극명하게 드러 나는 몇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강남대학교 -박의수- 연구논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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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6, 2013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책 서문

수년 간 나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는 어떻게 독재 정권의 출현을 막고 무너뜨리는가 였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인간이 독재 정권에 의해 억압 받고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의해 부분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은 인간 자유의 중요성, 독재 정권의 본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전체주의 해설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독재 정권의 역사 ( 특히 나치와 스탈린 체제) 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확고해졌습니다.


나는 지난 수년 간 나치 정권 하에 살면서 고통 당했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중에는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살아남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나치 손아귀에서 탈출한 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또 그들이 살아남도록 도와준 사람들과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 통치 하에서 사람들이 겪었던 공포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만남보다는 책을 통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공포는 특히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 왜냐하면 이들의 독재 정권이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강요 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십 년간 독재정권이 다스리던 파나마, 폴란드, 칠레, 티베트 그리고 미얀마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늘날의 독재정권의 실체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중국 공산주의 억압에 대항하여 싸운 티베트 사람들, 1991년 8월 강경주의 쿠데타를 막은 러시아인들, 그리고 군사체제로의 복귀를 비폭력적으로 막은 태국 사람들에게서 독재정권의 본질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게 되었고 독재정권에 대하여 염려스러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극심했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계속 저항하던 장소를 방문했을 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한 남녀들의 침착하고 영웅적인 행동에 감탄하는 한편 독재 정권의 야만적인 행위에 대하여 는 비애감과 분노가 깊어갔습니다. 노리에가 치하의 파나마, 소련의 계속된 억압 치하의 리투아니아와 수도 빌니우스, 축제 분위기 속에서 자유 시위를 할 때와, 그 운명의 밤 첫 무장 병력이 진입한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그리고 “해방 미얀마”의 매너플로에 있는 민주 야당의 정글 본부가 그러한 장소입니다.


나는 때때로 빌니우스에 있는 텔레비전 전탑과 묘지와 같이 전사자들이 묻힌 곳, 사람들이 총살당한 리가에 있는 공원, 파시스트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총살한 북부 이탈리아 페라라의 중심지, 그리고 너무나 일찍 죽은 사람들의 사체로 가득한 매너플로에 있는 수수한 공동묘지 같은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모든 독재정권이 이렇게 죽음과 파괴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슬픈 사실입니다.


이러한 염려와 경험에서 확고한 소망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폭정을 예방하는 것이가능하고, 상호간의대살상없이성공적인독재투쟁을할수있으며, 또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고 잿더미로부터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독재정권의 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고통과 생명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독재 정권을 성공적으로 와해 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하여 주의 깊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여러 해 동안의 저항 운동과 혁명, 정치적 견해, 정부 구조 그리고 특히 현실적인 비폭력 투쟁에 대한 연구를 담았습니다.


이 책의 출간이 그 결과입니다. 이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 책이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해방 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생각과, 그 계획에 도움이 되는 지침을 줄 것입니다.


이 글은 필요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공통의 문제인 독재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리며, 또 다른 독재 정권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가 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나는 어떤 특별한 나라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나 처방을 제시하는 일에 유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일반적인 연구가 너무나 많은 나라에서 독재 통치의 현실에 직면해 있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독재 치하의 사람들은 이 연구가 그들의 상황에 타당한지, 해방 투쟁에 관한 주요 제안들을 어디까지 적용하며, 또 어디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연구의 어디에서도 독재자에 대항하는 저항이 쉽다거나, 혹은 값을 치르지 않는 일이라고 가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형태의 투쟁은 복잡한 것이며 대가가 따릅니다. 독재자와 싸우는 것은 물론 사상자를 냅니다. 이 연구가 저항 지도자들에게 격려되어 사상자 숫자를 줄이는 한편,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효과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전략을 고안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연구가 어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을때, 다른 모든 문제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한 정권의 몰락이 지상낙원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정의로운 사회, 경제, 정치관계를 정립하며, 여러 가지 모양의 불의와 억압을 뿌리 뽑으려면, 근면함과 오랜 기간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어떻게 독재정권을 와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 간단한 연구가 독재정권 지배하에 살면서 자유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 샤프


1993년 10월 6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연구소 보스턴, 매사추세츠 



Saturday, July 27, 2013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강준민 지음

두란노/2000년/356쪽 

▣ 저자  강준민

서울신학대학 졸업 후, 아주사 신학대학원과 탈봇 신학교를 마쳤다. KOSTA(국제복음주의 학생 연합회)와 미주 두란노서원의 큐티 세미나 강사로 활동하며, 월드 미션 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영성과 목회 지도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미국 LA소재 로고스 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 중이다. 저서로는 『뿌리깊은 영성』『묵상과 영적 성숙』 『꿈꾸는 자가 알아야 할 21가지 믿음의 법칙』 『사랑과 열정으로 쓴 목회 서신』이 있고 역서로는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가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요셉은 꿈꾸는 사람이었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줄 알았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 준비했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할 줄 알았습니다. 요셉은 꿈을 성취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성취하길 원합니다. 이 책에는 당신의 꿈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성취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정직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꿈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내면에서 일어납니다. 따라서 꿈을 정복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정복해야 합니다. 고난, 역경, 실패, 유혹, 낙담, 좌절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꿈꾸는 자에게 필요합니다. 이 책에는 꿈을 정복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비결도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꿈을 성취한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꿈을 성취하도록 도와주신 요셉의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요셉과 같이 꿈꾸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요셉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바로 이 시대의 요셉이 되어야 합니다.

▣ 차 례

제1부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꿈꾸는 자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꿈 /꿈은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다 /유혹의 덫을 피하라 /꿈꾸는 자는 훈련을 통해 준비된다 /꿈이 성취되는 축복된 순간

제2부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기쁨

꿈의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만들라 /성취된 꿈은 상처를 치유한다 /꿈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지혜/ 꿈꾸는 자의 거친 사랑의 손과 부드러운 마음 /하나님은 꿈의 동역자 /꿈꾸는 사람의 균형잡힌 인격

제3부 꿈꾸는 자의 축복의 열매

큰 숲을 그리며 꿈의 씨앗을 심으라 /축복 기도로 자녀의 꿈을 키우라 /꿈꾸는 자는 축복의 열매를 거둔다 /꿈의 완성은 하나님의 섭리에 있다 /믿음의 꿈은 최후까지 승리한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강준민 지음

제1부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시는 하나님


꿈꾸는 자

요셉은 꿈을 소유한 사람이었고, 꿈을 성취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꿈을 위해서 값을 지불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꿈을 소유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극히 적습니다. 그 이유는 꿈을 소유했지만 그 꿈을 위해서 값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꿈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요셉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의 꿈이었습니다. 요셉을 강하게 만든 것도 그의 꿈이었습니다. 요셉을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만든 것도 꿈이었습니다.

세상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꿈꾸는 사람의 미래는 꿈꾸지 않는 사람의 미래와 현저하게 다르기 때문에, 꿈꾸는 사람 앞에는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꿈꾸는 사람에게 항상 머리를 숙입니다.

둘째로 세상은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인간을 대단히 위대하고 두렵게 만드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소유를 넘어선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이삭까지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꿈을 성취한 이후에 실패하는 까닭은 지나치게 소유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세상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목숨을 내어놓은 사람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진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소유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과감하게 투자하고, 희생하고, 초월하게 됩니다. 또한 꿈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죽음을 초월한다는 사실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꿈

사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꿈은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의 크기와 방향입니다. 꿈의 크기에 따라서 인생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꿈의 방향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방향을 잘 설정한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꿈을 잘 키우고 가꾸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꿈을 주십니다.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통해서 꿈을 주시기도 합니다. 꿈을 성취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생애를 연구할 때, 그들 안에 있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붙잡았던 원리를 배워서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셉의 생애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편, 꿈꾸는 사람은 요셉처럼 구덩이에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구덩이는 고통과 고난의 구덩이입니다. 실패라는 구덩이입니다. 질병이라는 구덩이입니다. 배신이라는 구덩이입니다. 역경과 시련이 동시에 한꺼번에 찾아와 꿈꾸는 자를 당혹하게 하기도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화려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금을 타는 사람으로 왕궁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그는 사울 왕의 끊임없는 미움을 받습니다. 사울 왕의 추적을 받으며 죽음의 골짜기를 수없이 통과합니다.

이런 시련의 순간에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이 꿈꾸는 사람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은 결코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할 때 르우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와중에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우리가 죽이지 말고 구덩이에 던지자!"라고 르우벤이 말합니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의 시련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안에 우리의 생애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관심은 성급한 꿈의 성취보다는 꿈꾸는 자의 성숙에 있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를 시련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17세의 나이에 꿈꾸는 요셉이 성숙하려면 하나님의 시련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꿈과 함께 꿈꾸는 자를 성숙시키는 데에 바로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만일 꿈꾸는 자가 성숙되지 않고 그 꿈을 성취하게 되면, 그 꿈을 통해서 악한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섬김을 위해 주어진 중요한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꿈이 성취되는 것보다 꿈꾸는 자가 성숙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요셉을 훈련시키시고 시련으로 단련하신 것입니다.

꿈은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다

꿈은 소유해도 되고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꿈은 꼭 소유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 마음에 오히려 독을 쌓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꿈을 가진 사람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칸트는 그의 나이 74세에 유명한 철학 책을 썼습니다. 베르디는 85세에 "아베 마리아"를 작곡했습니다. 시인 테니슨은 80세가 되어 "죽음을 향해"라는 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또한 괴테는 80세에 『파우스트』를 완성했습니다. 꿈은 나이를 초월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처럼 찾으시는 것은 꿈입니다.

그렇지만 꿈꾸는 사람이라고 다 꿈을 실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행운을 기다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한 남자가 매일 밤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제발 한 번만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시옵소서... 제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제발 좀 당첨되게 해주셔서 다시는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몇 년 동안 이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어느 날,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네가 최소한 복권 한 장이라도 산다면 복권 당첨을 고려해 보겠다!"

복권 한 장 사는 값도 지불하지 않고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시련을 만난다고 인간이 다 위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시련 당하는 자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히브리 사람 가운데 애굽에 팔려 간 사람이 요셉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만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원망하며 안일하게 살아갈 때 요셉은 미래를 위해 피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혹의 덫을 피하라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혹독한 시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도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실패의 순간도 아닙니다. 꿈꾸는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시험은 바로 유혹입니다. 시련을 견디는 사람들도 유혹 앞에 쓰러지는 경우가 수없이 많습니다.

인간은 역경의 순간이 아니라 번영의 순간에 약합니다. 토마스 칼라일은 "역경은 인간으로서 견뎌 내기 힘든 상대이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 내는 사람이 백 명이라면, 번영을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유혹 앞에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또한 유혹은 한 순간 극복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은 인생의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보통 20대와 30대의 젊은 날에 찾아오는 유혹은 성적인 유혹입니다. 40대에 찾아오는 유혹은 명예라는 유혹입니다. 성취를 통해서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유혹입니다. 50대 이후에 찾아오는 유혹은 물질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안전하게 보내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런 유혹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유혹을 정복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유혹의 성격에 따라, 싸우고 정복해야 할 것이 있고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유혹은 싸우거나 정복해야 할 유혹이 아니라 피해야 할 유혹이었습니다. 요셉은 젊고 성욕이 왕성한 나이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 가운데 성적 욕망보다 강한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집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보디발의 아내가 적극적으로 요셉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이런 유혹을 이기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가진 꿈 때문입니다. 그의 꿈은 단순히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꿈은 사명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가족과 그 당시 전세계를 구원해야 할 꿈이었습니다. 한 순간의 정욕에 자신을 내던질 수 없는 엄청난 꿈이었습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유혹보다 강렬한 하나님의 꿈을 갖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꿈을 갖는 것입니다. 사람이 크다는 것은 꿈이 크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꿈이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꿈이 큰 사람들은 자신을 지킬 줄 압니다. 시시한 쾌락에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시시한 쾌락만큼 인간을 작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꿈꾸는 자는 훈련을 통해 준비된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을 이길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정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언제나 내면에 있습니다. 요셉의 훌륭함은 극기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유혹을 극복한 요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감옥이었습니다.

요셉의 고통은 선행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의를 행하고, 선을 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은 불공평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유혹을 극복했는데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감옥행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했는데 오히려 오해와 비난의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요셉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셉은 그 아픔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뢰했습니다.

요셉의 특징은 고난 중에도 멈추어 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계속해서 전진했습니다. 뒤로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버린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환경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행했습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요셉에게 있어서 가장 혹독한 훈련은 기다리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13년을 기다렸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11년, 감옥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2년 동안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인물들일수록 오래 기다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때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림의 때를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기다림의 때에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로 미래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배양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꿈이 성취되는 축복된 순간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성취의 기쁨입니다.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서 그 꿈을 성취할 때, 인간은 최상의 환희를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꿈이 없는 사람은 성취를 통한 신비로운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선수들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뼈를 깎는 훈련을 합니다. 때로는 가족을 떠나 그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삶을 절제하면서 4년, 8년, 또는 16년 동안을 기다리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헌신의 대가로 메달을 받았을 때 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면서 꿈이 성취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환희에 찬 삶을 경험합니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꿈이 성취되는 순간, 지나간 과거의 모든 사건들이 요셉에게 새롭게 해석됩니다. 어두운 시절들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이것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분이 "벼랑 끝으로 오세요!"라는 글을 썼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대답했다. "무서워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그가 말했다. 사람들이 다가갔다.

그는 그들을 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날아올랐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벼랑 끝에 서서 떨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하늘을 날아 올라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기회가 찾아왔을 때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꾸는 사람은 기회를 탈 줄 알아야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바로가 부른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회를 알아보았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중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 앞에 나가기 전에 먼저 외모를 가꿉니다.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요셉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그는 기회가 왔다고 그 기회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했습니다. 기회를 포착할 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꿈을 해석할 지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쉽게 이 기회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무르익기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위해 준비하십시오.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알아봅니다. 준비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와 함께 매일 매일 준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기회에 마음의 문을 열고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면 주저함 없이 도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회란 잡으면 눈부신 열매를 맺지만 소홀히 여기면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제2부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기쁨


꿈의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만들라

기다림 가운데 이룬 성취는 쉽게 이룬 성취보다 그 기쁨이 훨씬 큽니다. 땀 흘린 수고 후에 찾아온 안식, 기나긴 기다림 속에서 맺어진 사랑은 고귀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성취한 꿈은 값진 것입니다. 요셉은 13년의 기나긴 기다림, 피눈물 나는 고통 중에 꿈을 성취합니다. 꿈을 성취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을 외모로 쉽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한 농장 주인이 자기 집 머슴이 자기 딸과 사귀는 것을 알고 그를 쫓아 버렸습니다. 35년 뒤 주인이 창고를 치우다가 우연히 머슴의 짐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머슴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는데, 바로 미국의 20대 대통령인 A. 가필드였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될 사윗감을 쫓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머슴도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괴테는 "먼지도 태양 빛을 받으면 빛을 발한다."고 말했습니다. 먼지 같은 인생도 태양 빛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노력과 교육과 훈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지 않으면 그 땀 흘림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훌륭함은 그가 성공한 후에 더 잘 나타났습니다. 요셉의 성품은 고난의 때보다 성공한 후에 더 아름답게 드러났습니다. 사실 인간은 고난 중에는 겸손합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번영의 때에는 교만해지기 쉽고, 하나님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성공을 두려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후에 몰락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공을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성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디딤돌입니다. 요셉은 성취를 섬김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는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 것보다도 성취한 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꿈을 성취한 사람들은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상에 결코 오랫동안 머무르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축하만 받고 있으면 안됩니다.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정상은 단순히 한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상에 세우신 것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는 사람이 오래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명을 맡은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8절에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사명자의 길은 절대로 편안한 길이 아닙니다. 물론 영광도 있고 기쁨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자의 길에는 항상 수고와 땀과 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꿈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지혜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되기 원한다면 평범하게 살기를 거절해야 합니다.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은 다를 뿐이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꿈꾸는 요셉은 항상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의 문제라 할지라도 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말만 하고, 관망만 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해서 해결의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꿈꾸는 사람은 문제가 많은 인생에 비전을 제시합니다.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문제 속에서 새로운 길과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큰 꿈을 성취하려면 큰 문제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꿈꾸는 사람들은 문제를 예상하며 해결책을 간구해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모험심이 없습니다. 의심이 많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을 많이 씁니다. 야곱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두려움 속에 산 사람입니다. 형 에서를 두려워했습니다. 형에게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두려워했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을 떠날 때 두려워했습니다. 피해의식이 강했습니다.

야곱은 야심이 있었지만 꿈이 없었습니다. 욕심은 있었지만 비전이 없었습니다. 꿈과 야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꿈과 욕심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타인 지향적입니다. 욕심과 야심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 지향적입니다.

요셉의 강인함은 자신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로 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꿈의 동역자

요셉은 그의 꿈이 성취되는 성공을 맛보았습니다. 기나긴 인고의 세월 끝에 핀 한 송이 꽃처럼, 하루아침에 감옥에 있던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성공을 경험합니다. 꿈을 성취하는 것은 달콤한 것입니다. 성공은 감미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성공이라는 자리에 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공은 꽃과 같은 것입니다. 꽃처럼 화려한 것이 성공입니다. 자기가 꿈꾸던 것이 성취되는 것이 성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꽃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찾으십니다. 꽃이 목표라면 열매는 생의 목적입니다. 나무에 꽃이 핀 후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나무의 영광은 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때 성공했다가는 더욱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성공이 화가 되고, 성공이 가정에 재앙을 가져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적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공까지만 목표를 정했지 성공 후에 맺어야 할 열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성공 후에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합니다. 생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성공에 인생 최종 목표가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명 완수에 우리의 최종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셉의 꿈은 정치가가 되어 만인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정치가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면, 만인의 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은 그의 목적이었습니다.

사명처럼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용감하게 만들고, 성실하게 만들고, 지혜롭게 만들고, 경건하게 만들며 진지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칼 힐티는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그 목적을 깨닫는 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대업을 성취한 사람을 보십시오. 역사의 큰일을 이룬 사람들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사명을 자각한 사람입니다. 자기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입니다. 요셉은 꿈의 성취로 만족한 것이 아니라 사명의 성취를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도 쉽게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일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절을 한 때는 그가 성공한 때이지 꿈이 실현된 때는 아닙니다.

꿈의 성취와 실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꿈의 성취는 그의 꿈이 완성되는 초기의 사건입니다. 꿈의 실현은 꿈이 완성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선명했습니다. 창세기 37장 7절을 보면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요셉의 위대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요셉을 위대하게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여기에 말씀의 핵심이 있습니다. 사실 요셉과 같은 성품을 가진 인물은 세게 역사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 가운데 요셉의 성품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을 한 인물의 성품이나 기질이나 노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의 반만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두 손을 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맡겨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인생의 노력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때, 신비롭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문제는 풀리고 말할 수 없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우리 나라의 목욕탕에 써 있는 말이 있습니다. "맡기지 않은 물건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주인 백."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우리 생애, 우리 자녀, 우리 사업, 우리의 재능과 은사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고 있으면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제 요셉은 이 땅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꿈을 꾸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처럼 당신이 가진 꿈이 실현되길 원하십니다. 꿈이 실현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원하십니까? 부디 꿈을 소유하십시오. 소원을 가져야 소원을 성취합니다. 꿈이 있어야 꿈을 이룹니다.

Friday, July 19, 2013

정전협정 60주년 기념 동유럽 국가 방문 일지를 시작하며.

동유럽과 한반도의 인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북한의 탱크들이 38선을 넘었고 3시간만에 서울을 함락하였다. 그렇게 한국전쟁은 시작 되었고 3년 1개월간의 치열한 전투에도 불구하고 어느쪽도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조인되면서 현재까지 60년간 휴전상태가 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의 정치 군사질서를 규정하는 정전체제가 성립되게 되었다. 

정전협정이 조인 되었을 당시 누구도 정전체제가 60년이 되는 오늘까지 오래 지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의 정전은 동서 냉전이라는 국제질서와 공산주의 정권인 북한과 자본주의 정권인 남한의 적대적 관계에 영향을 받으면서 장기화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갈수록 평화체제도 전시체제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황이 몇십년간 계속되고 있다. 

정전체제하에 지난 수십년간 남북간 크고 작은 무력충돌이 계속되어 왔고 서해 NLL 을 둘러싼 서해교전, 연평도 포격 사건 등 불안과 평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정전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함께 한반도에서 전쟁재발을 막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정전협정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 위기를 관리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폴란드와 체코의 한반도 사랑


중립국감독위원회(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 NNSC)의 기능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중립국 시찰소조부터 마비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북한측 중립국감독위원회 위원국이 모두 철수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한측 중립국감독위원국은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가 남한에서 활동 하였고 유엔측 위원국은 스위스와 스웨덴이 북한지역에서 활동하였다. 

2013년 통일세대 팀이 방문 하게될 체코와 폴란드는 한반도 정전협정 중립국 감독위원회 북측 위원국이다.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정전협정 기구중의 하나로 활동을 계속하며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정례적으로 회의를 개최하여 왔다. 그런데 1989년 이후 동유럽과 소련 등 공산권의 몰락과 함께 중립국감독위원회 체코 및 폴란드가 북한이 참관을 거부하였던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관단을 파견하는 등으로 북한과 불협화음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 5월 22일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대해 공식활동 중단을 통보하고, 1991년 6월 개성에 있는 중립국감독위원회 대표단 사저에 대해 가스공급을 중단하였고, 1991년 19월 15일 수도, 전기, 생필품 등에 대한 공급을 중단하였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직후부터 북한은 체코 및 폴란드 대표부에 대해 개성-판문점간 교통편의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1993년 1월 중순 이후부터는 체코출신의 중립국감독위원회 대표 및 관련요원 4명에게 관례적으로 해오던 교통(차량지원 등), 식량, 전기, 수도, 의료 제공 등의 지원을 완전히 중단한것은 물론, 의료지원까지 제한하고 외국인과의 접촉마저 불허하기에 이르렀다.

1992년 1월 1일부터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이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되자 중립국감독위원회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의 지위를 승계하고자 하는 체코공화국의 중립국감독위원회 자격을 부인하면서, 1993년 4월 3일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을 판문점에서 철수시켰다. 또한 북한은 외교부 명의서한을 폴란드 정부에 보내 중립국감독위원회 폴란드 대표단의 자진 철수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폴란드정부는 중립국감독위원회는 한국정전협정이라는 국제조약에 의해 설립된 기관으로 정전협정 상방의 합의에 의해서만 폐지될 수 있음을 근거로 하여 중립국감독위원회 고수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북한은 1995년 2월 28일까지 폴란드 대표단이 판문점에서 철수할 것을 최후통첩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폴란드 대표단을 비무장지대내의 불법 외국인으로 체포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강제조치로 인해 중립국감독위원회 폴란드 대표단은 할수 없이 1995년 2월 28일 판문점에서 철수하였다. 

폴란드 정부는 여전히 중립국감독위원회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1995년 10월 5일 스위스 베른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스위스, 스웨덴 및 폴란드 대표단이 회동하여 공동성명을 발표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첫째,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법적으로 규율하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도구이며 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둘째, 한반도에서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존재와 기능은 정전체제 유지를 위한 본질적인 요소이다. 

셋째, 중립국감독위원회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확고하게 지지하는 정전협정의 주춧돌이다.

넷째,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위원국들은 폴란드대표를 철수시킨 북한의 행동이 정전협정의 문언과 정신에 대한 중대한 위반임을 재천명한다.

다섯째, 북한의 중립국감독위원회 활동 제한조치는 대표들의 임무수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제한들은 정전협정의 문언과 정신에 반한다. 정전협정이 유효하게 존재하는 한 중립국감독위원회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북한의 활동제한은 조속히 중지되어야 하며 중립국감독위원회의 활동은 즉각 재개되어야 한다.

여섯째, 중립국감독위원회 위원국들은 관련 당사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본연의 임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남북한간의 접촉채널을 제공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용의가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중립국감ㄷ고위원회 대표의 역할은 향후 한반도평화의 정착과 정에서 더욱 막중해 질 것이다. 

일곱째, 중립국감독위원회 위원국들은 지금과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계속 중립국감독위원회 대표직을 유지하며 정전협정상의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임을 결정한다. 




폴란드와 체코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변환을 하여 성공한 나라인 반면에 정전협정 중립국 위원국으로 한반도 평화와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북한과 비슷한 사회주의 체제여서 북한 사회가 변화할때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들은 많이 있을것 같다. 이러한 교훈의 땅에 26명의 남북한 청년들이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9박 10일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앞으로 블로그를 통하여 나루려 한다. 2차세계 대전 이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한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에서는 1980년대 후반기에 민주화혁명이 일어났다. 

체코에서는 벨벳혁명이 승리하여 공산정권이 무너졌고, 폴란드에서는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의 투쟁으로 공산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체코는 쿠폰민영화를 통해 자유시장경제를 도입하여 국영기업을 민영기업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가 모든 기업을 외국계 기업에 빼앗기는 실패를 맛보았다. 폴란드는 IMF 와 월드뱅크가 제안한 충격요법을 사용하여 성공한 정책으로  현재는 폴란드 체코 모두 민주주의 지수나 국민총생산액은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 

변화의 물결의 중심에는 언제나 청년들이 있었다. 폴란드와 체코 그리고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청년이라함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 이라고 국어 사전에서는 정의를 내린다. 영혼육이 성장하여야 할 청년들이 대한민국 땅에서는 성장이 멈춰져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도전보다는 안정을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을 창업보다는 취업을 선호하며 통일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과연 청년들의 문제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일까? 앞으로 몇주간 동유럽 국가를 돌아보면서 변화의 앞장에 섰던 그 시대 청년들(지금은 할아버지)과의 이야기를 통해 느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